[책마을] 韓민주주의 주춧돌, 온건·중도가 놓았다

입력 2022-01-06 17:52   수정 2022-01-07 01:59


진영 간의 대립이 심화하면서 ‘친일파’라든가 ‘빨갱이’라는 비난이 난무한다. 좌우를 막론하고 급진적인 주장이 힘을 얻는다. 형평성을 위해 ‘부자의 것’을 빼앗아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각종 안전망을 없애고 시장 만능주의로 돌아가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갈림길에서 한국이 어떤 선택을 하는가에 따라 앞으로의 100년이 결정될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역사학자 이승렬이 쓴 《근대 시민의 형성과 대한민국》은 100여 년 전에도 우리가 비슷한 선택을 해야 했음을 보여준다. 그때도 급진 세력이 기세를 부렸다. 하지만 결국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온건 세력이었다. “급진주의가 기세를 올리던 시절에 온건한 한국인은 차선책을 선택해 나갔다. 그들은 ‘분열하며 퇴행하는’ 현실에서 통합하며 전진하는 미래의 길을 모색했다.” 그리고 온건파의 중심은 호남의 진취적 지주들이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아시아에서도 매우 독특하다. 독재와 억압을 겪기는 했지만 전체주의나 군국주의에 빠져들지 않았다. 민주화를 이뤘고, 평화적인 정권 교체를 이어가고 있다. 이웃인 일본, 중국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책은 “이러한 3국의 차이는 농업의 상업화 형태와 상층 지주의 정치적 역할과 관련이 있다”고 분석한다.

1876년 개항 이후 미곡(쌀을 비롯한 곡식) 무역이 활발했던 호남에선 관료제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대지주들이 출현했다. 조선 왕조의 중심지인 기호(경기·충청) 지역 지주들도 미곡 무역에 편승해 부를 축적했지만, 대부분은 기존 관료제에서 기득권을 누리던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구체제의 유지와 강화에 더 관심이 많았다.

초기 개혁은 왕실 세력과 양반, 기호 지역 지주와 상인들에 의해 추진됐다. 갑신정변, 갑오개혁, 광무개혁 등이다. 동학농민운동도 농민이 주도했지만 그들 역시 농업 관료제에 익숙한 사회 세력이었다는 지적이다. 이런 개혁은 중국의 견제와 일본의 방해에 시달리며 모두 실패했다. 결국 대한제국은 1910년 일본에 강제로 병합됐다.

이를 계기로 기호 지역을 거점으로 한 주류 세력은 정치적·사회적 헤게모니를 상실하고, 호남 지주들이 대체 세력으로 떠올랐다. 호남 지주를 대표하는 인물은 김성수다. 신흥 부자였던 그는 서울에서 교육(중앙학교)·경제(경성방직)·문화(동아일보) 등의 영역에서 한국인이 활동할 수 있는 거점을 제공하고 다양한 세력을 끌어들였다.

호남 지주들은 온건한 민족주의 운동의 한 축을 담당했다. 3·1 운동에 기여하고, 해방 이후에는 좌파와 우파의 개혁적 이념이 통합된 대한민국 수립 과정에 참여했다. 특히 그들은 광복 후 대한민국에 의회 제도를 정착시키는 데 도움을 줬다. 저자는 “전라도 출신의 김성수와 평안도 출신의 안창호가 대체로 정치적 현실주의라고 할 수 있는 온건한 민족주의를 대표한다는 공통점을 지녔다면, 소수의 기호 지역 인사들은 낭만적이면서도 급진적인 민족주의를 선도했다”고 평가한다.

‘부르주아 없이 민주주의 없다’는 말이 있다. 영국에서 보듯 상층 지주 세력의 온건하고 타협적인 태도는 의회주의 안정의 근간이 됐다. 해방 후 한국이 급진적, 혁명적 열기에 휩쓸리지 않은 것도 이들 신흥 지주 덕분이었다. 이승만·조봉암·김성수 등으로 대표되는 정치 세력들은 갈등하면서도 연합해 농촌의 혁명적 요소를 제거해 나갔다. 1948년 7월 헌법 제정, 8월 15일 정부 출범, 1950년 농지 개혁 등으로 이어진 일련의 과정은 ‘개혁적 점진주의’라는 기초를 세운 일이었다. 김성수 등은 이승만 정부가 독재로 돌아서자 반독재 민주화 운동 전선에 섰다.

책은 만약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지 않았거나 갑신정변이나 갑오개혁이 성공했다면 지금 한국은 크게 달랐을 거라고 말한다. 왕실은 건재했을 것이고, 지배 계층 엘리트들이 정치를 주도했을지 모른다. 왕실이 존재하고, 자민당이 60년 넘게 집권하는 일본처럼 말이다. 다른 시각에서 보자면 파란만장하고 실패의 연속처럼 보였던 한국의 근대사가 사실은 새로운 시대를 형성하는 힘을 응축하고 있었던 셈이다.

저자는 지금 한국에도 온건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통합은 전체주의화가 아니라 다양한 이념을 가진 세력들이 경쟁하면서 서로 존중하는 자연스러운 상태를 의미한다. ‘2보 전진’의 원동력은 통합의 길을 연 온건주의자였고, 그 온건주의의 사회적 기반은 상층 지주 세력에서 출현한 독립적인 자유주의 세력이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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